[혁신레터] 목민심서로 읽는 지방선거 ⑨ — 다산의 개혁, 어떻게 가능했는가
지방자치혁신뉴스에 연재된 하종삼 대표의 「목민심서로 읽는 지방선거」 ⑨편을 보내드립니다. 다산의 개혁이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었던 이유를 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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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조건 만들기, 정책결정의 세 원칙, 그리고 주민참여의 본질
원래 아홉 번째 글은 벼슬을 마치는 '해관(解官)'을 다루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선거가 막 시작된 이 시점에 임기의 마무리를 논하는 것은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재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스쳐 지나갔으나 별도의 주제로 삼지 않았던 다산의 개혁에 대한 원칙과 정책결정의 원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개혁의 첫 번째 원칙 — "크게 해가 없는 것은 옛 것을 따르고, 심한 것만 고친다"
其無大害者, 悉因其舊, 釐其太甚 (기무대해자 실인기구 이기태심)
크게 해가 없는 것은 옛 것을 따르고, 심한 것은 고친다. —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스스로 개혁의 원칙으로 제시한 이 문장은 목민심서 40만 자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산이 개혁을 대하는 근본 자세는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왜 다산은 잘못된 모든 것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심한 것만' 고친다고 했을까. 앞 글에서 본 대로 첫째, 수령의 자치권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것과 둘째, 행정실무자인 아전의 공식 급여가 없다는 것이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이룬 가장 탁월한 성취는 바로 이 역설의 해결이다. 급여 없는 향리들이 먹고 살 길을 열어 주면서, 동시에 그들이 백성을 수탈하는 것을 막는 것. 형용모순 같은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방법이 '크게 해가 없는 것은 두고, 심한 것만 고친다'는 원칙이었다. 이 원칙이 지금까지 살펴본 전정의 은결 처리법, 군정의 척적(尺籍) 방식, 환정의 공정 집행 방안 모두를 관통하는 근본 논리다.
개혁의 조건을 만드는 일 — 순막구언(詢瘼求言)의 정치학
개혁의 원칙을 세웠다 해서 곧바로 개혁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산은 먼저 개혁이 가능한 조건을 만드는 일에 공을 들인다. 그 핵심이 순막구언(詢瘼求言), 즉 '병폐되는 것을 묻고 그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것'이다. 다산은 목민관이 부임한 이튿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백성들에게 다음의 명령을 내린다.
부임 이튿날, 백성에게 내리는 여덟 가지 명령
① 본관은 적임이 아님에도 외람히 나라의 은혜를 입고 이 고을에 부임하여 아침저녁으로 근심과 두려움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② 묵은 폐단이나 새로운 병폐로 백성들의 고통이 되는 것이 있으면 한 방(坊) 중의 일을 잘 아는 사람 5~6명이 한곳에 모여 의논해서 조목을 들어 문서를 갖추어 가져오게 하라.
③ 혹 한 고을 전체에 해당되는 폐단과 한 방이나 한 촌(村)의 특수한 고통은 각각 한 장의 종이에 쓰되, 방마다 하나의 문서를 갖추어서 지금부터 7일 이내로 일제히 와서 바치라.
④ 혹 아전·군교·토호들이 들으면 싫어할 일이어서, 후환이 두려워 드러내어 말하지 않는다면, 수령이 부임한 초에 폐단을 묻는 본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⑤ 각각 엷은 종이로 피봉(皮封)을 만들어 풀로 붙이고 그 밖에 표지하여 어느 날 정오에 함께 읍내에 들어오고 또 함께 관아의 뜰에 와서 본관의 면전에 직접 바치라.
⑥ 만약 어떤 간민(奸民)이 있어 읍내에 들어와서 오래 머물면서 위의 문서를 고치거나 삭제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엄벌에 처할 것이다.
⑦ 민폐를 물어 알기는 쉬우나 개혁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고칠 만한 것은 고치고 고칠 수 없는 일은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 오늘에 너무 떠들지 말고 후일에 실망함이 없도록 하라.
⑧ 방리(坊里)의 사사로운 폐단을 혹시 사정을 두어 헛되이 과장하고 그 실상을 감추거나 뜬소문을 꾸미는 사람이 있으면, 마침내는 죄를 받게 될 것이니 아울러 조심하라.
이 8개 항은 단순히 민원을 접수하겠다는 행정 절차가 아니다. 고을의 명망 있는 주민 대표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아전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밀봉 제출을 보장하며, 섣부른 약속을 철저히 경계하면서도 허위 보고에는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원칙이 8개 항 속에 모두 들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순막구언은 그 자체로만 보면 백성을 위한 좋은 일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시행했다가는 오히려 백성들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행위가 된다는 점이다. 다산은 이 점을 분명히 경고한다.
준비 없는 개혁 선언의 위험
수령의 임기는 길어야 2년, 짧으면 몇 달이다. 반면 병폐의 주역인 향리(鄕吏)는 대대손손 그 고을에 뿌리를 내린 실권자들이다. 섣불리 병폐를 고했다가 수령이 교체되고 나면 그 백성들이 당하는 보복은 뻔하다. 비록 수령은 좋은 뜻으로 병폐를 물었다 해도, 결과는 수령의 본뜻과는 무관하게 백성들의 큰 해악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래서 목민심서 부임의 모든 과정은 이 순막구언을 위한 일종의 정지작업이다. 궐내행하(闕內行下)를 걷지 않고, 신영쇄마전(新迎刷馬錢)을 이미 납부한 백성에게는 세액으로 되돌려 주고, 행장을 간소화하여 군졸을 동원하지 않고, 아전들의 읍총기(邑聰記)를 받지 않고, 부임길에 형장을 쓰지 않는 것들이다. 이렇게 하면 비록 백성들이 수령의 얼굴을 보지도 못 했고, 수령이 일언반구 백성에게 명령을 내린 것은 없지만 백성들은 새로 오는 수령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
이처럼 순막구언의 진정한 의미는 명령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명령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먼저 만든 다산의 치밀한 설계에 있다. 준비 없는 개혁 선언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산은 이를 이미 200년 전에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책결정의 원칙 ① — 현실에서 효과가 확인된 정책을 제시한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제시하는 정책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산의 시대, 현실의 영역에서 이미 효과가 확인된 방안들이라는 것이다. 다산은 실현 가능성이 검증되지 않은 이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가 제시하는 정책의 원천은 세 가지다.
첫째, 다산 자신이 직접 시험하여 효과를 본 것이다. 다산은 1797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재임하면서 삼정 문란의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여러 정책을 몸소 시행해 보았다. 그 경험이 《목민심서》 전반의 살아 있는 근거가 된다.
둘째, 다른 지방관이나 선배들이 실험하여 효과를 본 것이다.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23사(史)와 우리나라의 여러 역사 및 자집(子集) 등 여러 서적을 가져다가 옛날 사목이 목민한 유적을 골라서 세밀하게 고찰한 후 분류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 방대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작동한 것들을 추려낸 것이 《목민심서》다. 재난 편인 진황(賑荒)에서 경신대기근(1670~71년) 때 청풍 부사 홍처량(洪處亮)이 3년간 절약하여 비축한 곡식으로 고을 전체가 대기근을 이겨냈다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셋째, 백성들이 스스로 자구책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부분이다. 다산은 백성들이 현장에서 만들어낸 생존의 지혜를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정책의 가장 강력한 근거로 삼았다. 군정 편에서 제시하는 군포계(軍布契)와 역근전(役根田)은 마을 백성들이 스스로 고안해 운영하던 공동 부담 방식이었다. 대동법(大同法) 역시 그 뿌리는 백성들이 스스로 마련한 자구책에 있었음을 다산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심서(心書)'에 대한 오해
다산이 말하는 목민심서 54개 조항은 이 세 가지 원천을 바탕으로 추린, '현실에서 100퍼센트 실현 가능한' 정책들이다. '심서(心書)'라는 용어로 인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으나, 이는 직접 백성을 구제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담은 표현이지 정책을 마음속에서 지어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책결정의 원칙 ② — 반드시 백성의 의견을 수렴한다
효과가 검증된 정책이라 하더라도 다산은 이를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실제 고을에 정책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백성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두었다. 그리고 그 수렴의 대상은 추상적인 이슈가 아니라 백성들 삶에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의 영역'이다.
전정(田政)에서의 주민참여를 보자. 다산이 제시하는 서북지방(西北地方) 납부방식의 핵심은 마을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재결(災結, 재해로 인한 감세 대상 토지)의 배분을 마을에 맡기고, 그 결정에 있어서도 마을 대표의 의견을 반드시 듣도록 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총액을 수령이 일방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의 판단을 최대한 존중한 것이다.
군포(軍布)에서도 마찬가지다. 군포 납부 대상자 명단인 척적(尺籍)의 배분에 마을 대표의 참여를 보장했다. 부담의 총량을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배분의 형평성을 마을 구성원들이 직접 판단하게 함으로써, 수령의 자의적 결정과 아전의 부패가 낳는 부작용을 막고자 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기술이 아니라 의사결정권을 공동체에 위임하는 행위다.
구휼(救恤) 정책에서도 같은 원칙이 관철된다. 진황편에서 다산은 구제 대상인 기구(饑口, 굶주린 가구)를 선정할 때나 재원 부담자인 부호(富戶)를 선정할 때 모두 공의(公議)를 통하도록 설계했다. 평소 관아를 드나들며 아첨하는 자들을 배제하고, 조용히 농사짓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대표자를 뽑아 의견을 수렴했다.
백성들의 의견보다 더 공정한 것은 없다.
— 다산의 일관된 판단
더불어 다산의 정책이 때로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공정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주민 의견 수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백성이 직접 참여하여 결정한 것이기에, 설령 형식적 법규에서 벗어나는 부분이 있다 해도 그 공정성의 기반은 흔들리지 않는다.
정책결정의 원칙 ③ — 백성이 알아야 한다: 문서화와 지속성의 원칙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했다고 해서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정책이 수령이 교체된 뒤에도 지속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마지막 역할이다. 여기서 다산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백성이 알아야 한다'는 전제다.
다산은 합의된 정책을 세 부 작성하여 보존하도록 했다. 수령용·아전용·백성용 세 부를 작성하여 별도로 보존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 관리가 아니다. 이후 다른 수령이 부임하여 이 정책을 바꾸려 할 때, 백성들이 그 문서를 근거로 관청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다산이 곡산부사 시절 만든 민고절목(民庫節目)이 그 생생한 증거다. 민고(民庫)란 각 고을의 지방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이 부담하는 일종의 자치 재원인데, 그 운용 방식이 아전들의 자의에 맡겨져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다산은 곡산에서 백성과 아전 모두의 의견을 모아 민고절목을 새로 만들었다. 이 절목이 얼마나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던지, 다산이 임기를 마치고 떠난 뒤 후임 수령이 이를 고치려 했으나 아전과 백성 모두가 반대하여 결국 바꾸지 못했다. 한 수령의 개인적 선정(善政)이 아니라, 제도로서 살아남은 것이다.
정책의 지속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책의 지속성은 수령의 의지나 덕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이 그 정책을 알고, 그 정책을 지킬 법적·현실적 도구를 손에 쥐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다산은 '백성이 알아야 한다'는 원칙을 개혁의 출발점이자 완결점으로 삼았다. 순막구언에서 시작하여 세 부 문서 보존에 이르는 다산의 정책 설계는 모두 이 원칙 위에 서 있다.
오늘의 지방선거를 위한 교훈 — 형식보다 실질, 말보다 제도
오늘의 지방행정에도 주민 의견 수렴 절차는 풍성하다. 공청회, 토론회, 주민설명회, 설문조사, 온라인 의견 수렴까지 다산이 상상도 못할 만큼 다양하고 세련된 형식들이 갖춰져 있다. 그런데 이 절차들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가. 공청회는 요식행위에 그치지 않는가. 수렴된 의견이 실제 정책에 반영되었는지 사후에 확인되는가.
여기서 다산과 오늘을 비교하면 흥미로운 역전이 일어난다. 오늘의 의견 수렴 절차는 형식 면에서 다산을 훨씬 앞선다. 그러나 다산이 의견 수렴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전정·군정·환정 등 정책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 백성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세금의 영역'이 그 중심이다. 오늘의 공청회가 주민들 삶에 정작 중요한 세금·부담금·복지 급여의 배분에서 진정한 주민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 앞에서, 형식의 우위는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 형식은 다산보다 앞서 있으나, 내용은 다산에게 배워야 할 면이 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목민심서》는 지방행정의 특정 분야만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이전(吏典)의 인사 원칙부터 호전(戶典)의 세금 공정성, 예전(禮典)의 교육·복지, 형전(刑典)의 형사 사법, 병전(兵典)의 군사 행정, 공전(工典)의 토목·산업에 이르기까지, 지방행정의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백성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말뿐인 개혁이 아니라, 실제 고을에서 당장 실행 가능하고 효과가 확인된 54개 조항의 대안이다. 다산의 개혁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상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현실의 작동에 있다.
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후보에게 물어야 할 것이 바뀌어야 한다. '공약이 얼마나 화려한가'가 아니라 세 가지를 물어야 한다.
유권자가 후보에게 물어야 할 세 가지
첫째, 제시하는 정책의 근거가 무엇인가 — 다른 지역에서 효과가 검증된 것인가, 현장의 경험에서 나온 것인가.
둘째, 주민이 그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가 — 특히 세금과 예산 배분에서 주민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는가.
셋째, 결정된 정책이 후임자가 와도 바꾸기 어렵도록 제도화되는가 — 백성이 알고 지킬 수 있는 형태로 남겨지는가.
민폐를 물어 알기는 쉬우나 개혁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오늘에 너무 떠들지 말고 후일에 실망함이 없도록 하라.
—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 부임편
이 한 마디 속에 개혁에 임하는 다산의 신중함, 현실주의, 그리고 백성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 모두 담겨 있다. 선거의 계절에 이 원칙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단순한 고전 탐독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 하종삼 · 목민심서연구소 대표 · 원작 게재: 2026-05-25 · 지방자치혁신뉴스(jach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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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호는 지방자치혁신뉴스(jachinews.kr) 게재 칼럼을 그대로 큐레이션한 것입니다.
원성묵 지방자치혁신연구원 원장 · 지방자치혁신뉴스 발행인
지방자치혁신뉴스(jachinews.kr)에 새로 게재된 글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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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덕영 · 원작 게재: 2026-06-19 20:11 ·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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