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레터] 목민심서로 읽는 지방선거 ⑥ — 인사가 만사다
지방자치혁신뉴스에 연재된 하종삼 대표의 「목민심서로 읽는 지방선거」 ⑥편을 보내드립니다. 새 단체장이 가장 먼저 쥐는 권한, 인사(人事)에 관한 다산의 원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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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 없는 관료가 만든 구조적 부패 · 측근정치 배제와 권(勸)·징(懲)의 인사 원칙 · 이계심을 "천금에 사들일 인재"로 본 다산의 혁신적 인재 발굴법
현대보다 앞섰던 조선의 관료 인사 —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제1편에서 잠깐 살펴봤듯이 조선의 인사 시스템은 동시기 대부분의 다른 국가들이 혈통에 의해 지배층을 결정한 것과 달리, 능력에 의한 과거제도를 기반으로 채용하고 순자격(循資格, 최저승진소요기간 적용)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고과평가(해유를 포함)에 의한 승진, 서경과 추천이라는 인사 검증, 사헌부 등의 감찰과 징계 등 철저한 통제와 절차를 규정하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현대 공무원 인사제도보다 더 철저한 인사관리 시스템이라 할 정도로 운영했다.
반면, 지방의 행정실무자인 향리(鄕吏)에 대한 인사 문제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앙 관료와 지방 행정실무자 향리에게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중앙 관료와 지방 향리의 두 가지 결정적 차이
① 지방 향리는 일종의 역(役)이고 대대손손 이 역을 담당해야 한다. 중앙 관료와는 다르게 향리는 개인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② 지방 향리는 중앙 관료, 또 중앙의 행정실무자인 서리(書吏)들과 달리 공식적인 급여가 없었고 체계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급여 없는 관료"가 만든 구조적 부패 — 조선 지방행정의 원죄
지방 행정실무자, 바꿔 말하면 백성이 국가 권력을 가장 체감하는 일선 행정실무자인 향리에게 공식적 급여가 없다는 것은 조선 행정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공식적 급여가 없다는 것은 그들이 먹고 사는 모든 것이 불법이라는 뜻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통일된 규정이 없다는 뜻이다.
세금을 걷어들이고 형벌을 집행하는 실무자들에게 공식적인 급여가 없다는 것은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수탈의 다양한 수단을 행정실무자들에게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아주 원론적으로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들이 먹고 사는 방법이 불법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로 인해 조선 초부터 이 문제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러나 다산은 이 문제를 《목민심서》에서 별도의 주제로 설정하여 다루지 않는다. 문제를 지적하고 '은결의 반을 찾아 향리의 녹봉으로 삼아도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향리의 정원을 고을 규모에 맞춰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다산이 이 주제를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행정실무자의 공식적 급여가 없다는 것은 행정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다. 현대 국가는 공직자들에게 반부패의 의무를 강제하는 기반에 "국가는 공직자가 공정하고 청렴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국가 등의 책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 국가의 책무를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실현하고 있다. 앞 글에서 '은결을 묵인하되 은결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또 곡산부사 당시 아전이 먹고 사는 방법의 하나인 '민고절목'을 개정하는데 이 절목의 개정을 아전과 백성 모두가 기뻐했다는 형용모순적인 일을 해낸다.
《목민심서》에서 다산이 행하는 모든 정책의 기반에는 이 문제, 즉 공식적 급여가 없는 아전의 문제가 있다. 행정실무자인 아전이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 없이는 그 어떤 정책도 의미가 없음을 다산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전 타락의 진짜 원인 — 개인의 문제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이 문제를 이렇게 진단한다.
"만력(萬曆, 명 신종神宗의 연호. 1573~1619) 이전에는 아전들의 횡포가 그리 심하지 않았는데, 왜구의 침입이 있은 이래 사대부는 녹봉이 박하여 가정이 가난해졌고, 나라 안의 재물은 온통 오군문(五軍門)의 양병(養兵)에 쓰여졌다. 그래서 탐욕의 풍조가 점점 자라고 아전의 습속이 따라서 타락하여 수십 년래 날로 심해져서 오늘에 와서는 극도에 이르렀다."
— 《목민심서》 이전 속리(束吏)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 아전의 타락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여 아전을 나쁜 사람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조선이 망한 원인을 아전에게서 찾는 분들도 있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인류 역사 어디에서도 정책결정권자가 아닌 행정실무자, 즉 하위 공무원이 국가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적은 없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모든 죄를 덮어쓸 이유는 없다. 더 큰 원인 제공자는 정책결정권자들이다.
다산은 조선 후기 아전이 타락한 원인을 아전 개인의 개인적 문제가 아닌 제도적 문제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아전 타락의 원인이 개인적 수신(修身)의 문제라면 교화와 처벌이 대책이 되겠지만,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제도가 원인이라면 대책은 제도적 개혁이 된다. 다산이 선택한 것은 제도적 개혁의 길이었지만, 이 역시 지방관 자치권의 한계에 부딪친다.
근본적인 대책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아전의 급여를 법제화하고 아전의 정원과 진급에 대한 것 역시 법에 명시하는 것이 되겠지만, 이는 지방관의 권한을 벗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다산이 선택하는 방법은 역시 '주어진 자치권 내에서의 적극행정'이다.
측근정치의 배제 — 수령은 먼저 자기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다산이 먼저 수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신이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이다. 다산은 "자신이 청렴하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하면서 사나운 것을 주무로 삼으니 그 폐단이 심각하다"고 분명히 경고하고 있다. 얼핏 이 문장은 수령 개인의 도덕적 수신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다른 측면이 있다. 이전(吏典)에서 수령이 해야 할 일로 '측근정치'를 배제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속대전》에 가족을 많이 데려간 수령은 파출(罷黜)하게 되어 있지만, 여기에 더해 다산은 가족을 데리고 간다고 하더라도 아버지(父)나 형(兄)은 절대 동행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효(孝)가 이데올로기나 마찬가지였던 성리학 기반의 사회에서 아버지와 형의 존재가 지방행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산은 미리 차단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다산은 친척이나 친구 역시 관부에 함부로 드나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심지어는 가족과 관부의 사람들과는 대화 자체도 금지하고 있을 정도다.
다산의 이러한 측근정치 배제는 다산만의 고유한 주장이 아니다. 조선은 측근정치의 배제에 있어 근대 이전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철저함을 갖추고 있었다. 왕실은 애초에 정치에 개입할 수 없었으며 내시 역시 철저하게 이조(吏曹)의 통제를 받던 사회였다. 왕실이나 황실 자체가 권력의 기반이었던 다른 나라나, 내시의 문제가 극에 달했던 중국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측근정치를 배제하는 조선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상벌(賞罰)을 분명히 하라 — 권(勸)과 징(懲)의 인사 원칙
측근정치를 철저히 배제하는 기반 위에 다산은 아전에 대한 인사의 기본원칙을 서술하고 있다. 비록 국법에 없는 것을 혼자 행할 수는 없다는 전제를 두고 있지만, 아전들 역시 철저하게 고과를 행하여 공과(功過)에 따른 상벌(賞罰)을 시행할 것을 말하고 있다.
"대저 사람을 통솔하는 법은 권(勸)·징(懲) 두 글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공이 있는데 상이 없으면 백성이 권면되지 않고, 죄가 있는데도 벌이 없으면 백성이 징계되지 않는다. 권면하지도 징계하지도 않으면 모든 백성이 해이해지고 모든 일이 무너지게 된다. 모든 벼슬아치와 여러 아전들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지금은 죄가 있는 경우 벌이 있지만, 공이 있는 경우 상이 없기 때문에 아전들의 버릇이 날로 간악한 데로 달리는 것이다."
— 《목민심서》 이전 고공(考功)
勸(권) + 懲(징) = 紀(기)
권(勸, 공로에 상을 내려 권면함) + 징(懲, 잘못에 벌을 내려 경계함) = 기(紀, 조직 기강). 다산이 짚은 인사의 두 축이다. 둘 중 하나만 작동해도 조직은 무너진다. 조선 후기 아전 사회가 무너진 이유를 다산은 "벌은 있는데 상이 없기 때문"이라 진단했다. 현대 인사관리도 다르지 않다.
이계심의 난에서 찾은 인재 — 다산의 혁신적 인재 발굴법
다산의 인사정책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인재의 선발 방법이다. 다산이 곡산부사 때 '이계심의 난'을 처리한 것과 《목민심서》에서 말한 인재 선발 방안을 보면 다산의 인재정책이 얼마나 진취적인지 알 수 있다.
"곡산 백성에 이계심(李啓心)이란 자가 있었는데, 본성이 백성의 폐단을 말하기를 좋아하였다. 전관(前官) 때에 포수보(砲手保) 면포 1필을 돈 9백 전(錢)으로 대징(代徵)하였다. 이계심이 소민(小民) 1천여 인을 거느리고 관부(官府)에 들어가서 다투었다. 관에서 그를 형벌로 다스리려 하니, 이계심은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오영(五營)에서 수사하였으나 그를 잡지 못하였다. 용(鏞, 다산 자신)이 경내에 이르니, 이계심이 민막(民瘼) 10여 조를 쓴 소첩(訴牒)을 가지고 길 옆에 엎드려 자수하였다. 이윽고 석방하면서 말하였다. '관이 밝지 못하게 되는 까닭은 백성이 자신을 위한 계책을 잘하여 폐단을 들어 관에 대들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관에서 천금(千金)으로 사들여야 할 것이다.'"
— 《다산시문집》 16권, 자찬묘지명
관에 항거한 자를 잡아 벌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대에, 다산은 그 항거한 자를 "천금을 주고 사들여야 할 인재"로 평가한다. 항거 자체가 행정의 폐단을 드러내는 신호이고, 그 신호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행정을 바로잡을 인재라는 것이다.
《목민심서》는 이 일화에 이어 인재 발굴의 일반론을 제시한다.
"한 향(鄕) - 우리나라 풍속에는 향을 면(面)이라 한다 - 에 무슨 일이 있으면 반드시 군소(群訴, 속칭 등장等狀)가 있게 마련이니, 그 속을 가만히 살펴보면 옳은 인재를 얻을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말솜씨를 들으며, 어리석은지 슬기로운지를 분별하고 충성스러운가, 간사한가를 구별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적어 가지고 향원(鄕員)들에게도 물어보고 향교 유생에게도 물어보고 해서 이리저리 확증을 얻으면 그 실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올바른 인재를 얻음에 따라 한 자리를 만들고 그 사람으로 메워 나간다. 이렇게 한 달에 몇 사람씩 쓰게 된다면 반년도 채 못 가서 향청(鄕廳)·무청(武廳)·풍헌(風憲)·전감(田監)이 모두가 다 한 사람도 한 고을의 신망을 가지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다."
— 《목민심서》 이전 용인(用人)
다산의 인재 발굴 원칙은 명확하다. 인재는 연줄에서 오지 않고 공론(公論)에서 온다. 현장에서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 마을의 갈등에 직접 나선 사람,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향중(鄕中)의 평판이 만들어내는 교차 검증 — 이것이 다산이 제시한 인사 검증의 출발점이다.
유권자와 출마자에게 — "인사가 만사"의 진짜 의미
지방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등장한다. 그러나 다산이 《목민심서》 이전(吏典)에서 말하는 인사의 원칙은 오늘날 선거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출발한다. 다산의 가르침을 출마자와 유권자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출마자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
① "인사가 만사"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있는가. 다산은 아전에게 급여 없이 청렴을 강요하는 구조를 제도적 실패로 규정했다. 직원들이 공정하게 일할 수 있는 보수·평가·보직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청렴과 헌신만을 요구하는 단체장은, 다산의 눈에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목민관이다.
② 당선 이후 측근 인사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가. 다산은 아버지와 형마저 관아에 함께 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배우자, 친인척, 캠프 참모를 요직에 배치하거나 인사 과정에 개입시키는 행위는 조선의 법조차 금지한 측근 정치다.
③ 공의(公議)와 순자격(循資格)의 균형을 이해하고 있는가. 정무직과 직업 공무원의 역할은 구분되어야 한다. 어디까지가 정무적 판단의 영역이고, 어디서부터가 직업 공무원의 영역인지를 단체장은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유권자에게 던지는 질문 — "인사가 만사"를 외치는 후보가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말이 측근 챙기기의 다른 표현인지, 아니면 공정한 인사 시스템의 구축을 뜻하는 것인지를 검증해야 한다. 다산이 이계심을 천금의 인재로 본 것처럼, 불편한 민원을 제기하는 시민, 현장의 불합리를 공론화하는 사람이야말로 지역을 함께 이끌 인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산은 말한다. 인사가 만사(萬事)가 되려면, 인사가 먼저 공사(公事)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사로서의 인사는 연줄이 아니라 공론에서 시작된다.
필자: 하종삼 · 목민심서연구소 대표 · 원작 게재: 2026-05-12 · 지방자치혁신뉴스(jach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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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호는 지방자치혁신뉴스(jachinews.kr) 게재 칼럼을 그대로 큐레이션한 것입니다.
원성묵 지방자치혁신연구원 원장 · 지방자치혁신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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