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레터] 목민심서로 읽는 지방선거 ⑤ — 단체장의 진짜 성적표
6·3 지방선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다산이 목민관에게 던진 질문은 표를 다 센 다음 날부터가 본론입니다. 선거 기간 지방자치혁신뉴스에 연재된 하종삼 대표의 「목민심서로 읽는 지방선거」를 ⑤편부터 완결편까지 이어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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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이 만든 54개 고과 항목 ─ "수령칠사 7개로는 부족하다, 추상적 기준은 부패의 지름길" ─ 중고(中考) 세 번이면 파직, 평가하는 자도 감시받는 이중 구조 ─ 유권자가 곧 관찰사다 ─ 후보의 공약집이 아니라 전임자의 성적표를 펼쳐드는 것, 그것이 지방자치 민주주의의 핵심
성적표 없는 자리
앞 글들의 시계 방향이 너무 조선으로 치우쳤는데 이번 글부터는 가급적 현대의 시점에 맞추고자 한다.
4년마다 지방선거가 찾아오고 후보들은 앞다투어 공약을 내건다. 그러나 이전 임기의 단체장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못 했는지를 따지는 체계적 논의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약 이행률 자료가 발표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선거의 향방을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선거는 이미지와 인지도, 정당 구도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다산은 이 문제를 200년 전에 이미 정면으로 다루었다. 목민관이 좋은 행정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선의에 맡겨서는 안 된다. 명확한 평가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따라 강제해야 한다. 《목민심서》 9편 54개 조항, 즉 수령의 고과평가 항목이 바로 그 기준이다.
"이 법을 시행한다면 태평의 치세를 조석에 기대할 수 있으리라."
— 다산 정약용, 《목민심서》
다산의 단언이다. 54개의 평가 기준이 작동하는 순간 좋은 행정은 며칠 안에 시작된다는 뜻이다.
수령칠사의 한계 — 7개로는 부족하다
조선에서 수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처음부터 54개 조항이 아니었다. 고려 말 5개 항목(오사五事)에서 출발하여 조선 개국 후 7개 항목(칠사七事)으로 늘어났다. 수령칠사는 농사 진흥(農桑興), 호구 증가(戶口增), 학교 진흥(學校興), 군정 정비(軍政修), 부역 균등(賦役均), 소송 간소(詞訟簡), 교활한 풍속 근절(姦猾息)이다.
다산은 《목민심서》 전편에 걸쳐 이 칠사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단순히 항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추상적인 기준이 오히려 수탈의 명분이 된다는 것이다.
⚠️ 다산이 짚은 칠사의 부작용
• 농상흥(農桑興) — 농사를 돕는다는 핑계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수단
• 호구증(戶口增) — 호구가 늘수록 백성들 세금이 늘어남
• 군정수(軍政修) — 군안 정비라는 명목의 아전 잔치판
• 학교흥(學校興) — 세력 있는 자들의 세금 회피처
▶ 다산은 결론짓는다. 칠사 중 오직 부역균(賦役均) 하나만이 백성을 수탈하는 부작용이 없다고.
수령칠사의 가장 큰 문제는 구체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정의 기준이 추상적이면 관료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지고, 관리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많아진다는 것은 곧 부패의 지름길이다. 인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다산이 54개 조항의 세밀한 기준을 제시한 것은 바로 수령의 평가 이전에 관리의 주관적 판단의 여지를 최대한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54개 조항 — '성적표'이자 '감시 장치'
다산 자신이 《자찬묘지명》에서 《목민심서》의 구성을 이렇게 정의했다.
律己·奉公·愛民 + 6典 + 賑荒
"율기(律己)·봉공(奉公)·애민(愛民)을 기(紀)로 삼고, 이전(吏典)·호전(戶典)·예전(禮典)·병전(兵典)·형전(刑典)·공전(工典)을 6전(典)으로 삼고, 진황(賑荒) 1목으로 끝맺음하였다." — 《자찬묘지명》
첫 편 부임(赴任)과 제11편 진황(賑荒) 그리고 마지막 편 해관(解官)을 제외한 나머지 9편 54개 조항이 수령의 고과평가 대상이다. 이것이 단체장의 진짜 성적표다.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자치권 내에서 수령이 해야 할 사무 54개조'가 《목민심서》의 실체다.
그런데 이 54개 조항에는 성적표의 기능과 더불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기능이 있다. 바로 목민관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감시 장치'로서의 기능이다.
다산이 서문에서 말한 "수령들이 스스로 실행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은 비관이 아니라 현실 인식이다. 수령을 둘러싼 향리들은 수탈에 혈안이 되어 있고, 상급 관청의 부당한 지시는 아래로 내려온다. 이런 구조에서 선의만으로 버티는 수령은 예외적 존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령이 54개 조항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감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산이 설계한 두 기능의 결합
• 성적표 — 일 년에 두 번 실시하는 결산 (정기 평가)
• 감시 — 임기 내내 작동하는 일상적 견제 (상시 모니터링)
▶ 다산이 설계한 고과 체계는 이 두 기능을 하나로 묶은 것이었다.
이 54개 조항이 다산의 창작이 아니라 이미 《경국대전》에 규정되어 있는 내용을 수령의 고적평가 항목으로 세밀하게 정리한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19세기 초반, 지방자치단체장의 사무를 일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국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권고'가 아닌 '강제' — 중고(中考) 세 번이면 파직
목민심서를 '수신(修身)의 교과서'로 보느냐, '고과평가 항목표'로 보느냐는 근본적으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수신의 차원이라면 54개 조항은 수령에게 '권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고과평가 항목으로 규정되는 순간, 그것은 강제조항이 된다. 전국 330개 고을의 모든 수령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반 행정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조선의 고과제도는 이 강제성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했다. 당시 《대전통편》의 규정은 명확했다.
"두 번 중고(中考)를 받으면 무록관(無祿官)에 서용하고, 세 번 중고를 받으면 파직한다."
— 《대전통편(大典通編)》
현대의 공무원 고과에서 낮은 점수는 승진이 늦어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고과에서 낮은 점수는 파직을 의미했다. 더구나 수령을 평가하는 관찰사 역시 관할 내에서 하고(下考)의 성적이 없으면 승정원의 찰추(察推)를 받았다. 한 도 내에서 반드시 쫓겨나는 수령이 나오도록 설계된 것이다. 평가하는 자도 감시받는 구조였다. 감시 체계는 수령에게만 작동한 것이 아니라, 그 수령을 감시해야 하는 관찰사에게도 동시에 작동했다. 감시자를 감시하는 이중 구조가 전체 시스템의 신뢰성을 담보했다.
유권자가 곧 관찰사다
다산은 이 전체 구조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했다.
"국가의 안위는 인심의 향배에 달렸고, 인심의 향배는 백성의 잘 살고 못 사는 데에 달렸으며, 백성의 잘 살고 못 사는 것은 수령이 잘하고 잘못하는 데에 달렸고, 수령의 잘하고 잘못하는 것은 감사의 포폄(褒貶)에 달려 있으니, 감사가 고과하는 법은 바로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이 향배하는 기틀이요, 나라의 안위를 판가름하는 바이다."
— 《목민심서》 이전 감사고공지법, 《경세유표》 고적지법
이 구조를 현대 지방자치에 대입하면, 관찰사의 자리에 있는 것이 바로 주민이고 유권자다. 관찰사가 수령을 평가하고 감시해야 시스템이 작동했듯이, 유권자가 단체장을 평가하고 감시해야 지방자치가 제대로 작동한다.
그런데 오늘날 지방자치의 현실을 돌아보면, 유권자는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는 지방자치단체 합동평가 등 다양한 행정 평가 제도가 있지만, 이는 개별 사업 실적을 따지는 것이지 단체장이 자치사무 전반에 걸쳐 공정하고 적극적으로 행정을 펼쳤는가를 종합적으로 따지는 체계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단체장이 지난 4년간 무엇을 했는지, 54개 자치사무 항목 중 무엇을 제대로 했고 무엇을 게을리 했는지를 체계적으로 따지는 논의 없이 선거가 치러진다. 성적표도, 감시 기록도 없이 진급을 결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방선거에서 물어야 할 것
그렇다면 유권자인 관찰사는 후보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다산의 54개 조항에서 현대 지방자치단체장의 직접 소관이 되는 영역을 추리면 핵심 질문들이 도출된다.
⚠️ 유권자가 후보에게 던져야 할 6가지 질문
① 예산이 공정하게 편성·집행되었는가.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혜택이 편중되지 않았는가.
② 노인·아동·장애인·저소득층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이루어졌는가.
③ 공무원 인사가 능력과 실적에 따라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연줄과 청탁이 개입했는가.
④ 단체장 주변의 이해충돌 상황은 없었는가.
⑤ 재난과 긴급 상황에서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대응했는가.
⑥ 현재 진행 중인 자치사무는 어디까지 와 있고, 다음 임기에 무엇을 마무리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화려한 공약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미 행해진 것, 실제로 결과가 나온 것을 묻는 것이다. 다산이 칠사의 7개 항목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54개의 구체적 기준을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상적인 기준은 평가도, 감시도 할 수 없다.
성적표를 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조선에서 관찰사는 수령을 평가하고 감시하는 의무가 있었고,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자신도 문책을 받았다. 이 이중의 감시 체계가 작동할 때 "태평의 치세를 조석에 기대할 수 있다"고 다산은 말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그 의무는 주민에게 있다. 단체장의 성적표를 요구하고, 임기 내내 그 이행을 들여다보고, 선거에서 그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것 — 이것이 지방자치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의 공약집이 아니라 전임자의 성적표를 펼쳐드는 것, 그것이 다산이 200년 전 《목민심서》를 통해 가르친 주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필자: 하종삼 · 목민심서연구소 대표 · 원작 게재: 2026-05-07 · 지방자치혁신뉴스(jach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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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호는 지방자치혁신뉴스(jachinews.kr) 게재 칼럼을 그대로 큐레이션한 것입니다.
원성묵 지방자치혁신연구원 원장 · 지방자치혁신뉴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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